
싸다는 이유만으로 주식을 산다면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저는 한때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PBR이 낮으면 언젠가는 시장이 알아줄 것이라 믿었고, 숫자가 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요. 지금 한국 증시에서 저 PBR 투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 그리고 어떻게 접근해야 함정을 피할 수 있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저평가 함정: 싼 주식이 오를 거라는 착각
PBR(주가순자산비율)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쉽게 말해 회사가 가진 자산 대비 주가가 얼마나 높거나 낮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1 미만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그 회사를 지금 당장 해산해도 주가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도 한때 이 논리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PBR 0.4, 0.5짜리 종목들을 모으면서 "이게 어떻게 안 오르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주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부는 더 떨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종목들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배당은 거의 없거나 들쭉날쭉했고, 자사주 소각 이력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실적 역시 몇 년째 제자리였습니다. 결국 시장이 그 기업을 싸게 평가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싼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유가 앞으로 바뀔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지 않고 덮어놓고 샀다는 점이었습니다. 저평가 함정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싸다는 결과만 보고 왜 쌌는지, 그리고 달라질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주주환원: 오르는 저 PBR과 안 오르는 저 PBR의 차이
투자 방식을 바꾼 이후 저는 한 가지 기준을 가장 먼저 봅니다. 이 회사가 주주를 위해 실제로 행동한 적이 있는가입니다. 여기서 주주환원이란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말이 아니라 실제 현금이 주주에게 흘러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사주 소각이란 회사가 시장에서 자사 주식을 매입한 뒤 아예 없애버리는 행위입니다.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주주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이익이 됩니다. 배당과 달리 세금 부담도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환원 방식입니다. 제가 주주환원을 꾸준히 하는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꾼 이후 체감한 차이는 상승 속도보다 하락 방어력이었습니다. 시장이 흔들릴 때 이 기업들은 확실히 덜 빠졌습니다. 실제로 2022년 하반기부터 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경기가 안 좋고 시장도 흔들리던 시기였는데, 기업들이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그 변화가 정부 정책보다 먼저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주주환원이 잘 이루어지는 기업을 고를 때 제가 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말이 아닌 행동이 지속적인가: 한 번 크게 하고 끝내는 회사보다 매년 꾸준히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소각하는 회사가 훨씬 신뢰할 수 있습니다.
- 현금흐름이 뒷받침되는가: 돈이 없는 회사가 억지로 배당을 늘리면 재무 건전성이 무너집니다. 잉여현금흐름(FCF), 즉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를 뺀 나머지가 충분한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 경영진이 주주와 소통하는가: 공시 없이 갑자기 큰 결정을 내리거나 주주를 놀라게 하는 회사는 아무리 PBR이 낮아도 저는 걸러냅니다.
구조적 변화: 이번 흐름이 단순 테마가 아닌 이유
저 PBR 투자가 다시 부각되면서 일각에서는 이걸 정책 테마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은 다릅니다. 이번 흐름은 정책이 불을 붙이기 전부터 이미 기업들의 행동이 바뀌고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테마로 보기 어렵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들이 비슷한 실적의 해외 기업보다 낮은 주가를 받는 만성적인 저평가 현상을 가리킵니다. 지배구조의 불투명함, 낮은 주주환원율,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PBR은 약 1배 수준으로, 미국 S&P500 평균(약 4배)이나 일본 닛케이 225 평균(약 1.5배)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일본의 사례는 이 구조적 변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가 2023년부터 PBR 1배 미만 기업에 개선 요구를 시작한 이후, 일본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가 빠르게 늘었고 닛케이지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출처: 도쿄증권거래소). 이 흐름이 한국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 PBR 투자에 주목하는 핵심 근거입니다. 다만 저는 이 변화가 모든 저 PBR 기업에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정부가 채찍을 꺼내든다 해도 지배구조가 복잡하거나 성장성이 없는 기업은 여전히 구조적 저평가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기회가 진짜 기회가 되려면 변화할 의지가 있는 기업을 골라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 PBR 종목 선택: 증권주와 지주사를 눈여겨보는 이유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어떤 저 PBR 종목을 봐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증권주와 지주사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두 섹터 모두 주주환원 여력이 있고, 실적이 시장 환경과 맞물려 개선될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주는 증시 거래대금과 직결됩니다. 거래대금이란 하루 동안 주식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된 금액의 총합입니다. 증권사는 투자자들이 많이 거래할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거래대금 증가는 증권사 실적에 직접 반영됩니다. 상승장이 지속되면 거래대금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시장 환경이 개선될수록 증권사 수익성도 함께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PBR 1배를 넘었지만, 중소형 증권사 중에는 아직 재평가 여지가 남아 있는 곳들이 존재합니다. 지주사는 그룹 전체의 자산을 보유한 구조 특성상 순자산가치(NAV) 대비 주가 할인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NAV란 지주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과 자산의 합산 가치를 말합니다. 지주사 주가가 NAV보다 낮게 형성되는 것을 할인율이라고 하는데, 주주환원이 강화될수록 이 할인율이 축소되면서 주가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상법 개정 논의와 맞물리면서 지주사들의 주주환원 확대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물론 자동차 섹터도 저 PBR 관점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영역입니다. 다만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나 환율 변수 등 외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증권주나 지주사보다는 변수가 많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저 PBR 투자의 핵심은 숫자가 낮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낮은 숫자가 앞으로 바뀔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들어낼 의지와 여력이 그 기업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가입니다. 저는 이 두 질문에 답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PBR이 낮아도 손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이후 결과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저 PBR 흐름이 단발성으로 끝날지, 아니면 한국 증시의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방향 자체는 바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향 위에 있는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들의 결과가 갈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은 꽤 확신합니다. 지금 이 흐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국 각자의 기준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